카테고리 없음 / / 2023. 12. 2. 20:33

활자잔혹극, 소통과 관련한 미스터리 심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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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잔혹극 책표지

영국 미스터리 소설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저자 루스 렌들의 <활자잔혹극>은 사회적 통찰과 범죄극을 교묘하게 엮어내 호평을 받은 책입니다. 문맹인 유니스로부터 시작되는 숨 막히는 스토리, 작가의 의도, 감상평을 정리했습니다.

자격지심과 우월감의 차이

우연희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에 외국인이 있고 참석자들이 나를 제외하고는 영어가 유창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영어로 소통됩니다. 나는 간단한 인사말 조금밖에 몰라서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미 소외감에 빠져 주눅이 듭니다.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가고 분위기도 좋지만 내가 한마디도 안 하면 사람들도 나한테 뭐라고 묻습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무슨 대화가 오고 가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요? 그냥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내가 그냥 수줍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한 명은 수줍음을 타는 내게 대답을 요구해서 미안하다고 농담을 해서 모두를 웃게 만드는 분위기 반전 센스를 발휘합니다. 그들은 다시 대화를 이어갑니다. 나를 지키려 했던 그들의 농담과 웃음은 웃음과 웃음으로만 다가옵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그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영어에 유창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당연하게 여겼던 그들의 문화에서는 영어가 그들의 모국어와 같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그들이 영어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당신은 영어를 잘하지 못할 수도 있고, 배울 상황이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그리고 "내가 당신을 가르쳐 줄게요"라고 기꺼이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좋은 의도에 넌더리가 나거나 더 숨기고 싶어질 것입니다. 영어는 이미 계층을 분명히 나누었습니다.

작가의 의도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결론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유니스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유니스는 살인을 한 번 저지르고 지속적인 협박을 여러 번 저질렀지만,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자신만의 아주 작은 세상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유니스는 커버데일 가의 가정부로 들어갑니다. 공적인 문서를 읽고 업무를 처리하거나, 신청서를 작성하여 TV를 빌리거나 심지어 TV를 사는 일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커버데일 가에서 가정부로 사는 것이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그녀를 활자의 힘과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문맹이란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극의 씨앗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커버데일 가족은 유난히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고, 우수한 교육, 그리고 특권의식을 가진 중산층이었습니다. 커버데일 가족의 운명은 유니스와 함께하게 되면서 파멸로 이끌리게 됩니다. 집주인 조지 커버데일은 유니스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동정심을 느끼지만, "당신이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라는 의미의 말을 함으로써 유니스를 은연중에 놀리는 행동을 합니다. 유니스는 수치심을 느끼고 자격지심에 불이 붙었습니다. 문맹인 유니스와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오페라와 같은 수준 높은 지식을 누리는 커버데일 가족.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곧바로 드러나지만, 그런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훨씬 더 미묘합니다.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유니스가 범인이라는 것은 형사로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유니스가 범인임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독자들의 긴장감을 놓치게 하지 않습니다.

감상평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분야에서건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구조와 인간의 삶은 모든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질 만큼 공정하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 배운 것이 죄가 될 때가 있듯이, 너무 잘나고 많이 배운 것이 죄가 될 때도 있습니다. <활자잔혹극>은 이에 대한 심리극이자 추리소설입니다. 이 책이 대단한 이유는 문맹이 결과하는 사회생활의 기술적 곤란뿐 아니라 문맹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나쁜 영향까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글을 읽는 독자들이 활자와 책에 대한 턱없는 신뢰와 교만을 피할 수 있도록 브레이크도 걸어줍니다. 책에 코를 박은 채 타자나 현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탐서가의 병폐도 질책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오만일 뿐입니다.  나의 생각과 내가 속한 세계가 전부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책을 읽으면서 점점 운둔자처럼 변해가는' 커버데일 가의 아들 자일즈의 의식세계는 '문맹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자폐 속에 갇힌' 유니스와 마찬가지의 병폐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많이 배웠든 안 배웠든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직해집시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자존감이나 행복은 많이 배우거나 잘 낫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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