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생소한 콘트라베이스에 관한 이야기지만 소시민으로서 느끼는 인생 전반적인 문제를 짚고 갑니다. 가령 콘트라베이스에 관한 편견부터 거추장스러운 악기지만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장점을 말하며 공감을 끌어냅니다.
콘트라베이스에 관한 편견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로 공연 가능한 희곡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국립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남자가 집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이야기하다가 공연하러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야기 내용은 해박한 음악지식과 함께 늘어놓는 신세 한탄입니다. 남자의 얘기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절합니다. 코트라베이스 연주자이자 예술가입니다. 사실 일반적인 직업이 아닌데도 남자의 고뇌는 독자들로 하여금 꼭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통착력에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콘트라베이스란 악기는 바이올린 종류의 현악기 중에서 가장 크고 낮은 음을 내는 악기입니다. 보통 네 현으로 되어 있고, 활로 켜거나 손가락으로 퉁겨 소리를 냅니다. 서두에서 남자는 전축을 틀어 브람스 교향곡 제2번을 들려준 뒤 콘트라베이스의 위상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도 압니다.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언제 제일 진땀이 나느냐고요! 한번 물어보시라니까요!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듣지 몰할 때 그렇다고 분명히 말할 겁니다. 완전 실패작이 되는 거죠."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재즈밴드를 비롯해 어느 장르의 음악이든 베이스가 빠지면 연주음은 폭발음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 거라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지휘자 없어도 가능하지만 콘트라베이스가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악기는 오케스트라의 중추적인 악기이자 모든 악기의 기준점이 됩니다.
매우 거추장스러운 악기
남자는 콘트라베이스가 얼마나 유별난 악기인지에 관해서도 하소연합니다. 인간이 악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이한 악기라는 것입니다. 그의 집은 사방 벽과 천장과 바닥에 방음판을 대고 문도 이중으로 만들었으며, 특수 이중 유리로 된 유리창을 끼워서 바깥의 소음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집에서 아주 작게 연주하는데도 위층에 사는 부인은 시끄럽다고 발을 쿵쿵 굴러댑니다. 또한 콘트라베이스는 너무나 커서 정말이지 거추장스러운 물건 같다고 합니다. 어깨에 메고 다닐 수가 없으므로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데 어쩌다 한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함께 나뒹굴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에 넣기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 앞자리에서 운전석 옆좌석을 떼어 내야만 실을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 움직일 때도 항상 이 악기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지나다녀야 합니다. 피아노처럼 멋스럽게 놓여 있는 것도 아닌 것이 그냥 바보처럼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고 서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항상 몸이 아픈데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그런 존재를 연상시킵니다. 더구나 여자 친구와 단 둘이 있고 싶을 때는 이 악기가 일거수일투족을 다 눈여겨보는 듯해서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날씨에도 민감한 악기라서 온도를 적당히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다른 단원들보다 더 복잡한 일들을 해내야만 합니다.
독창적이고 외로운 악기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는 사실 얼마 전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합니다. 오케스트라에 새로 들어온 나이 어린 소프라노 가수를 짝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녀가 첼리스트 남성단원과 사귀며 고급레스토랑에 드나드는 이야기를 하면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서의 전형적인 운명에 관해 설명합니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의 일반적인 현실로 보나 악기의 속성으로 보나, 결국 콘트라베이스와 소프라노가 둘이 함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악기는 독주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독주자라 해도 콘트라베이스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못합니다. 콘트라베이스를 위해 작곡된 곡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곡의 전체적 분위기는 눈물이 나올 만큼 슬프고 절망감으로 가득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아, 팀파니로구나!'라고 알아채는 사람은 있어도 '아, 콘트라베이스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이 악기는 제 소리를 독자적으로 내지 못합니다.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 악기의 돌연변이인 콘트라베이스를 그는 종종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는 삼십 대 중반이나 된 자신이 왜 이 따위 악기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지 그 까닭을 좀 설명해 달라고 외칩니다.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왜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따위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 그나저나 그는 과연, 공연 시작 직전에 그녀를 사랑한다고 그녀의 이름을 외칠 수 있을까요? 그의 말대로 공연을 망치게 될 테고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리란 걸 감수하고 말입니다. 철저하게 방음장치가 된 벽을 뚫고 자신의 소리를 전하려 애쓰는 악기, 그럼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코트라베이스. 어찌 됐든 콘트라베이스는 많은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슬프고 서러운 소시민들처럼 말입니다.
저자 소개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는 전 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암바흐에서 성장한 그는 뮌헨 대학과 엑상 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주목받지 못하다가 <코트라베이스>가 '희곡이자 문학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착을 받으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후 <향수> <비둘기> <좀머 씨 이야기> 등의 중·장편소설, 단편집 <깊이에의 강요> 등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독일 영화감독 헬무트 디틀과 함께 작업한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영화화되어 1996년 독일 시나리오 상을 수상했습니다. 2006년에는 <향수>가 톰 티크베어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