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3. 12. 11. 21:56

작은 것들의 신, 카스트제도에 짓밟힌 작은 존재들

728x90
반응형

작은 것들의 신
도서 작은 것들의 신

인도하면 가장 먼저 '카스트 제도'가 떠오릅니다. 아직까지 사회 깊숙이 고질적으로 남아있는 사회의 모순된 제도와 그로 인한 한 가족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1997년 작가 데뷔와 함께 부커상을 수상했습니다. 주요 스토리와 작가의 메시지를 정리했습니다.

인도 사회의 모순된 제도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은 1969년 인도 케랄라 주의 아예메넴에 살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가족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도사회의 모순된 제도에 기인합니다. 사회의 잘못된 관습이 사람살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슬프고도 숭고합니다. 저자는 이 작품을 '소피 몰'이 아예메넴으로 왔을 때부터 시작된 이야기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은 한 가지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 반박합니다. 즉, 이 작품은 어떤 상황이 단 하루 만에 변할 수 있으며 결국 평생의 삶을 뒤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상황은 사실상 수천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도 케랄라 주에 공산주의가 들어오기 훨씬 전에, 영국이 말라바르(인도 남부 서해안 전역)를 차지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이 보트를 타고 찾아와 차 봉지에서 차가 우러나듯 케랄라로 스며들기 전에 말입니다. 또한 사랑의 법칙, 즉 누구를 사랑해서는 절대 안 되며 누구를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 얼마나 많이 사랑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정한 '법칙'이 만들어진 시절에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작은 것들의 신이란?

주인공 '아무'는 사회의 관례를 깨고 벵골 출신 힌두교도와 결혼했지만 이혼을 하고 친정에 얹혀삽니다. 그녀는 혼자 발버둥 쳐봐야 꿈쩍도 않는, 겹겹이 모순으로 둘러쳐진 역사의 두터운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호전적으로 독설을 내뱉으며 도전하다가 서른하나라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연인이자 신분이 다른 '벨루타'는 물론이고, 그녀의 아이들까지 혹독한 고통을 받습니다. 이란성 쌍둥이인 그녀의 아이들, '에스타'는 실어증에 걸리고 '라헬'의 눈길은 언제나 무관심과 절망 사이의 어디쯤인가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절망이 서로 우위를 점하려고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공포와 평화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도 항상 균형이 이루어졌고 계속해서 더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곳에서의 삶을 그 누가 체감할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아무와 에스타와 라헬의 이야기를 통해 4대에 걸친 가족사를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인도의 역사를 다루는 큰 스케일은 물론, 세밀한 표현을 담아내는 데 공을 들이는 세심한 힘까지 보여줍니다. 한 가족의 역사와 인도의 역사를 담아낸 섬세하고 현란한 문장들의 연결을 통해 이 작품은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급히 읽어내려는 마음을 접고 차분히 정독을 해나간다면 큰 보상을 안겨줍니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무덥고 습한 5월의 아예메넴처럼 숨 막히는 고통의 무게와 그 고통에 도전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한 젊은 어머니의 사랑에, 그녀의 이란성쌍둥이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그리고 그녀와 '멋진 웃음을 가진 작은 것들의 신-벨루타'가 사랑을 나누는 마지막 장면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메시지

이 책은 저자 아룬다티 로이의 데뷔작이자, 본인의 삶을 투영한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 설정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사회문화적 배경까지 상당 부분 그녀의 삶과 겹칩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해 "이 소설은 나의 세상이며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또한 이 소설은 장소나 관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들과 땅과 공간에 관한 것이며, 어떤 특정한 사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저자는 인도사회의 모순을 비웃으며 냉소적인 시선을 일관합니다. '막네 코차마'의 편협한 신앙과 위선과 친영국적인 태도, '아무'의 아버지 '파파치'를 통해 드러나는 무자비한 가부장제의 폭력, 오빠 '차코'의 남성우월주의, 혁명을 일으킨 진보주의자들조차 전통적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그대로 답습해 버리는 한계, 충성심 넘치는 하인답게 아들의 금기시된 사랑을 주인에게 이실직고하는 벨루타의 아버지가 지닌 노예근성 등.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사회와 그 사회구성원들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덧붙이자면, '인도판 그리스 로마 신화'라 할 수 있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도 최고의 서사문학인 만큼 인도는 물론 인도에 인접한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마하바라타>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나라의 예술작품들에도 <마하바라타>가 수시로 등장하여 작품의 가치를 더해주곤 합니다. <작은 것들의 신>에서도 <마하바라타>의 한 부분을 인도 전통극으로 보여주면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하바라타>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더욱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