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야기 보조 축으로 나오는 '코스튬플레이'는 청소년들의 유동하는 정체성을 암시하며, 오늘날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원조 콩가루 집안의 사연
<불량 가족 레시피>는 원조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 있는 한 위태로운 가족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다부지고 신랄한 작가의 입담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 청소년들의 부유하는 정체성을 암시하는 코스튬플레이는 이 작품의 보조이야기로서, 다양한 캐릭터 분장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주인공의 절실한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인 여고생 여울이는 도덕 시간 수행평가로 자서전을 써야 합니다. 더구나 가족 이야기를 곁들여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울이네 가족사를 들춰내는 것은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어찌 됐든,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자서전 쓰기를 통해 여울이는 가족들 하나하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팔순을 넘긴 나이임에도 한번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는 잔소리꾼 할머니. 노인이라고 얕봤다가는 큰코다칠 정도로 성격이 꼬장꼬장합니다. 그리고 54세의 아빠, 그는 채권추심 하청 일을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안의 근심덩어리로 불리는, 엄마가 다른 이복 남매들이 있습니다. 뭉치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가족들. 여울이네 가족이 살 길은 오직 흩어지는 것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세 남매는 엄마가 모두 다릅니다. 이들 가족에게 '엄마'라는 말은 입 밖에 내선 안 되는 금기어입니다. 세 남매는 엄마 없는 생활이 익숙하지만 사실은 제각각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 외롭고 힘듭니다.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이라는 출신성분을 지우기 힘든 여울이는 상상 속의 엄마 모습을 그리워하며 외로운 현실을 간신히 버텨나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울이의 버거운 현실 도피의 수단이자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코스튬플레이입니다.
유일한 탈출구 코스튬플레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할퀴고 물어뜯고 상처만 주는 이 불량 가족에게 마침내 확실한 분열이 찾아듭니다. 아빠의 무임금 노동 착취와 무관심에 못 견뎌 언니, 오빠, 삼촌이 잇달아 가출합니다. 또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빠는 불법을 저질러 경찰에 구속이 되고 맙니다. 결국 여울이는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그런데 그토록 떨쳐버리고 싶었던 가족이라는 둘레를 그리워하는 묘한 감정에 빠집니다. 불량 갖고의 가장이 되어버린 여고생 여울이가 입시 경쟁과 학교교육의 위기 속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여울이는 부유하는 정체성을 코스튬플레이라는 놀이로 연결하며 판타지 세계에 빠져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닫습니다. 진짜 나의 모습으로 나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판타지 세계보다 멋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안정한 가정과 청소년들의 일탈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해체 직전에 놓인 가정에서 여울이는 자신의 삶과 가족들을 돌아보고 감싸 안으며 비로소 가족이라는 둘레에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갑니다. 이 작품을 읽는 청소년들이라면 '나'와 나의 '가족'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량 가족 레시피는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인생 레시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자 소개
저자 손현주 작가는 서울에서 출생하여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습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습니다.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과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