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는 2004년 이상문학상 특별상 수상작이며 작품집 <울타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식들을 키우며 삶에 찌든 어머니의 냄새를 통해 고단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의 냄새
동물들은 냄새만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을 추적하기도 합니다. 동물보다는 후각적 본능에서 떨어지지만 인간도 냄새에 반응합니다. 냄새를 맡으며 짙다, 얕다, 그윽하다, 향기롭다, 구수하다, 달콤하다, 구리다, 고약하다는 다양한 말을 끌어다가 표현합니다. 냄새는 곧 개성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냄새가 없다는 것은 개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는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나의 냄새가 주변을 유쾌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냄새가 살아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현관이며 거실, 주방과 안방, 서재, 화장실은 물론 거실의 소파, 식탁, 벽, 텔레비전에까지 냄새가 켜켜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집 안의 모든 가구와 방바닥, 벽에 걸린 장미꽃 그림에서까지 어머니의 냄새가 났습니다. 어머니의 냄새는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풋풋한 채소나 솔향기와는 거리가 한참 떨어진 썩힌 두엄 내, 해를 넘긴 젓국 내였습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두 종류의 향 가운데 취하라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래서 며느리는 점령군처럼 군림하며 확장돼 가는 고리타분한 어머니의 냄새에 병이 날 지경이었고 그래도 어머니인지라 양쪽 눈치를 보며 속 앓이 하는 것은 아들 몫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향기
"쌉쏘름한 찔레순 냄새와 들큼한 송기 냄새", 심지어는 "엄니 냄새가 겁나게 좋다."라고 아들이 말할 때에 어머니의 몸은 씻지 않아 땀 냄새와 쉰 냄새가 엉겨 있기조차 했었습니다. 여기서 며느리의 사려 깊지 못한 성격만을 탓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어머니 향기의 내력과 함께 한 것은 아들이지 며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며느리는 "노인들의 고약한 냄새는 다 욕심에서 나온다고요."말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더구나 둘은 고부사이가 아닙니까. 어머니는 팔십이 넘었지만 아직 생의 욕망이 왕성합니다. 식탐도 많고 시기심이며 질투심도 대단합니다. 오십 줄의 아내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기세가 왕성해 보였습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기세에 오랫동안 눌려 살고 있습니다.···어머니가 젊었을 적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배고픈 것도 잘 참았고 아무리 아파도 자리보전하거나 약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의 냄새와 일생
세상 모든 것에는 일생이 있습니다. 생물에도 일생이 있고 무생물에도 일생이 있습니다. 몇 번의 이사에도 꿋꿋이 안방의 윗목을 지키던 반닫이가 어느 날 보니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몇십 년 우리 가족과 함께 한 낡은 반닫이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한 집안의 역사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처음 들여왔을 때는 코끝을 자극하던 옻 냄새가 해를 넘기며 옅어지는 대신 고목 내 같기도 한 세월의 냄새가 묻어났던 반달이었습니다. 물론 코끝을 자극하던 옻 냄새를 맡았던 것은 조부 세대였지 내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일생이 있고 냄새에도 일생이 있기에 변하기 마련입니다. 역사가 없는 냄새는 가볍습니다. 때로는 가짜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기는 기분을 들뜨게 하지만 지나친 화장품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체취와 섞이지 않고 인공의 냄새만 극성을 부리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가짜는 그렇습니다. 돌아볼 추억이 있는 어머니의 냄새와 배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진자에게는 일생이 있고 내력이 있어 언젠간 썩어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가 세월이 흘러 변질됐다고 해서 등을 돌린다면 도리가 아닙니다. 노인의 냄새는 지나간 시절까지 품어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그 입장이 돼 보는 것, 머지않은 미래의 내 모습 아닐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부위만 떼어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해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해하면 사랑하고 껴안을 수 있게도 됩니다.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의 며느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저자 소개
저자 문순태 작가는 1941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고 조선대,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74년 한국문학에 <백제의 미소>로 등단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고향으로 가는 바람>, <징소리>, <철쭉제>, <시간의 샘물>, <된장> 등이 있습니다. 장편소설로는 <타오르는 강>, <그들의 새벽>, <정읍사> 등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소설문학 작품사,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